[9월]취준생도 행복하고 싶어서 -청년의 고백 4부작-(성현진, 박정영, 이솔, 송승원) > 청년 웹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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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취준생도 행복하고 싶어서 -청년의 고백 4부작-(성현진, 박정영, 이솔, 송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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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포청년나루 조회수 732회 작성일 20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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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고백 4부작]

행복하고 싶어서



0.


 팬데믹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고용 절벽과 치솟는 물가, 얼어붙은 경기까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청년들은 기댈 곳 없이 홀로 고립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비롯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낮은 사회 신뢰도는 무기력, 우울, 비관적 시각 등 청년들의 심리적 문제에 높은 영향을 끼친다. 청년이음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립 은둔 청년의 절반 가량인 48.4%가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약 13만 명의 청년들이 이곳, 서울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행복을 찾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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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청춘시대(2016) 속 윤진명(한예리)은 방황하며 고립된 취업준비생의 고민과 우울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JTBC 제공) 



1.


눈을 떴을 때, 그는 어딘지 덥게 느껴졌다. 이마 위로 땀방울이 송골히 맺혀있었고, 베개는 이미 축 젖어있었다. 그는 베갯잇을 벗겨놓고 옆에 걸쳐두었다. 그 위로 햇볕이 내리쬐었다. 밖은 벌써 완연한 아침이었다. 창이 남녘을 향해 있었으므로 빛이 아주 잘 들었는데, 돈도 없었고 귀찮았던 탓에 그는 아직까지 커튼을 달지 않았다. 얇고 가련한 햇빛이 두꺼운 창을 뚫고 그의 방을 온통 환하게 하였다. 그는 매트리스 밖으로 나서지 않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앉은 채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그러고선 그대로 눈을 붙이고 기다렸다. 방안에 초침 재깍이는 소리만 울리고, 2분쯤 지났을까, 그의 핸드폰에서 요란하게 알람이 울렸다. 7시 정각이었다.


 승원은 눈도 뜨지 않고 알람을 그대로 꺼버리고, 조용해진 후에서야 눈을 슬그머니 떴다. 이어서 핸드폰에서 메신저 알림이 연신 올라왔다. 각자 이름을 대고 기상했다며 남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승원도 느지막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송승원 기상했습니다. 몇 번의 알림이 더 뜨고서야 화면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그 후로도 승원은 동태 눈만 몇 번 끔벅이다가, 겨우 몸을 일으키곤 사지를 뻗고 돌리고 비틀며 그의 하루를 본격화했다.


 하루의 시작이라고 해봐야 랩탑을 켜고 인터넷에서 조간 신문을 찾아 읽는 수준이었다. 화면을 향한 승원의 초점 없는 눈에서 동공만 까딱,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승원은 서울시 무슨 구에서 전세 사기가 또 일어났다는 기사를 끝으로, 랩탑을 닫았다. 반 시간 남짓 승원이 본 스물다섯 개의, 살인이나 화재, 사기, 강도, 여전히 갑갑한 국내 정치를 다루는 기사 중에 한 줄도 희망적인 내용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더 좌절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승원은 대학을 갓 졸업했는데, 여전히 돈 버는 일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 아르바이트 정도는 하고 있었으나 용돈이나 겨우 버는 수준이었고, 생활비의 전반은 아직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생활이 괴롭기도 하고, 가능하다면 얼른 그만두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가 느끼기에 문제는 아직도 삶의 방향키가 고정되지 않은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과 별개로, 그는 그 자신이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부터가 그에겐 막막한 것이었다. 승원은 급한 대로 나름의 진로를 모색해보았고, 나름의 가능성도 확인했고 따라서 나름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었으나, 그 자신이 정말 해낼 수 있을지가 여전한 의문으로 그의 내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만약에 붙게 된다 하더라도, 그 자신이 그로 인해 행복할 수 있을지나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에도 불신을 달아놓고 있었다.


 각설하고, 승원은 밖으로 나서기로 했다. 옷을 차려입을 것도 없었지만, 그는 나름 멀끔해보이는 옷으로 갈아입고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여름날의 햇볕이 따가웠지만 그는 어쩐지 그것이 불쾌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빌라 밖으로 나서자 붉은 벽돌로 쌓아올려진 주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서 조끼 입은 어느 할아버지가 제 개를 끌고 산책하고 있었고, 하얀 그 개는 궁금한 게 많은지 오만 데 코를 가져다대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개와 눈이 마주치려하자 승원은 소심한 손짓으로 인사를 보냈지만 개는 눈치채지 못한 듯 그를 그대로 지나쳤다. 승원은 머쓱하게 웃으며 주택가를 계속해서 걸었다.


 골목을 돌아서자, 가방 멘 꼬마 셋이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그를 앞질러 뛰어갔다. 승원은 저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철없음이 주는 생동함에 대해 승원은 떠올렸다. 골목 저편에서 불어온 바람에 머리칼이 흐트러졌다. 어쩐지 포근하게 느껴져, 승원은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는 것도 잊고 그냥 멈춰섰다. 길목 카페 붉은 외벽에 꽃줄기처럼 놓인 바람개비가 여유롭게 돌고 있었다. 교회 건너편에선 과일 트럭 아저씨가 과일은 두고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자 대로변에 들어섰다. 


 역 근처에 오자 사람들이 분주하게 그를 스쳐갔다. 승원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길가 구석에 비켜섰다. 승원은 한참을 서서, 그대로 볕의 따스함을 느꼈다. 그는 어딘가 가슴 깊이 차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노곤함을 느꼈다. 승원은 이대로 녹아내리는 상상을 했다. 그는 문득 눈을 뜨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역 앞에서 어느 할머니가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다. 승원은 혼쾌히 받아들고 깍듯하게 인사까지, 좋은 하루 보내시라고 말했다. 전단에는 어느 휘트니스 짐의 광고가 인쇄되어 있었다. 승원은 친구 정영을 떠올렸다.


우울증은 크게 세 부류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 생물학적 요인이 그것이다. 환경적 요인이란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요컨대 흐린 날씨나 이별, 어떤 실패를 말한다. 우리가 여기서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음으로써 우울증의 증상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울감은 점심시간 산책하기, 햇볕 아래서 명상하기, 혹은 멍을 때리더라도 완화될 수 있다. 햇빛이 우리 인체에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바이오리듬과 수면, 기억, 고통, 감정 등 다양한 생리적 과정에 영향을 끼친다. 세로토닌 신경이 활성화되면 인체는 흥분과 불안 사이의 고요하고 평온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세로토닌을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이다. 현대의학에선 세로토닌 활성도를 반영하는 LDAEP(loudness dependence of auditory evoked potentials) 등의 지표를 통해 뇌파를 검사하여 우울증 여부를 진단하고 있다. 세로토닌의 원료인 트립토판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먹거나, 명상하기, 햇볕을 쬐기, 나아가 땅을 딛고 걸어가는 과정을 통해서도 세로토닌은 활성화될 수 있다.



2.


- 학교 다닐 때나 좋았지.


 정영은 잘못 들었나 싶어, 한참이나 말이 들린 쪽을 쳐다보았다. 정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자, 선배는 내리사랑이라도 하듯 다시 한번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구. 너, 지금이야 잘 놀아둬라. 나중엔 놀구 싶어도 못 놀아. 옆에서 다른 선배가 그 말에 동의라도 하듯 킥킥 웃었다. 정영은 웃음 속이라도 그게 마냥 농담이 아니라는 것쯤이야 느낄 수 있었다. 정영은 쓰게 웃었다. 그때 정영과 선배들은 사회조사실에 있었다. 사회학과 고학년생들은 자연히 과실에서 밀려나 으레 이곳에 둥지를 틀곤 했다. 복학을 한 지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정영은 아직 학교라는 공간이 마냥 친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히, 익숙한 사람들이 있던 사회조사실에 정영도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정영은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주워 담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그들 선배나 일찍 졸업한 동기들의 진로 이야기로, 어느 누가 대학원에 진학했고 다른 누구는 무슨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고… 하는 식이었다.


 정영은 어딘가 힘이 축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아직 대학생이었고, 마땅히 취업을 준비하지도 않고 있었다. 정영은 잠시 고민하다, 이만 가봐야 한다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밥 안먹고 가?

- 예, 운동 가려구요.

- 거기서 더 커지려고?


 옆에 서 있던 선배가 우스꽝스럽게 이두근 펌핑하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시선은 정영의 팔뚝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들 웃자 정영도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죠.


- 힘들진 않아?


 조용히 앉아 있던 동기가 물었다. 정영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힘드니까 운동이지, 말했다. 그리고 정영은 이렇게 생각했다. 힘든데 재미있잖아. 그러고선 조금 뜸을 들이곤, 생각을 잠시 하다가 정말 가보겠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섰다. 정영은 학교에서 다른 선배들이 사는 이야기에 치여 힘이 빠질 때면, 이렇게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운동을 하러 헬스장을 찾고는 했다. 오늘은 가는 길에 예쁜 캠퍼스에서 걷고 있는 한 커플을 보았다. 정영은 이 커플을 보고 생각했다. 연인은 언제나 배신할 수 있지만 운동은 나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헬스장까진 금방이었다. 정영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적막함 속에 격렬한 쇠질 소리나, 들숨과 날숨이 격하게 교차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저 끝에서 정영의 친구 A가 스쿼트를 하는 곳 주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방금까지 무게를 치고 있었는지, 헐떡이며 목에 건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A는 정영을 곧장 알아봤는지 이쪽을 보고 손바닥을 슥 휘적였다. 정영이 가까이 오자 A는 다시 무게를 치기 시작했다. 정영은 잠자코 보조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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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은 이 바벨을 들지 못하느니 깔리겠다는 마음으로 스쿼트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윌셔)



- 너 근력 운동 언제부터 시작했다고 했지?


 정영이 물었다. A는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하더니, 5년쯤 됐다고 답하곤 이유를 물었다. 정영은 그냥, 이라고 말하며 웃을 뿐이었다. A는 정영을 싱겁게 바라보곤 마저 운동을 계속했다. 12회 가량 반복하고 나서야 봉을 내려놓았다. 숨을 가쁘게 내쉬는 A에게 정영이 다시 물었다. 근력 운동을 하는 이유가 뭐야? A는 뭘 자꾸 묻느냐고 쏘아붙였다. 그러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 너도 알잖아,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야구, 축구 같은 운동을 좋아한지. 이렇게 하다가 성인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근력 운동을 접하게 된 거지. 사실 운동으로 몸이 좋아지고 나서 자신감도 붙고 옷핏도 잘 받더라고. 그리고 사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도 많이 달라지거든.


 A는 정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 안 그래?


 정영은 힐긋 벽시계를 보았다. 시침이 4 위에 놓여있었다. 정영은 봉에 가장 큰 원판 하나를 추가하더니 말했다. 빨리 본 세트 시작하자. 오늘 저녁에 유주 누나하고 미술 수업 들으러 가기로 했어.



-정신건강을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이유

1) 우울증 개선/예방/관리 효과: 신체활동은 건강한 성인은 물론, 우울증, 조현병(정신분열증), 알코올중독 환자 등 정신질환자에서 우울 증상을 감소시킨다. 신체활동은 유산소 운동과 무산소 운동(근력운동) 모두 우울증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약물치료 효과와 비슷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 인지기능 개선: 신체활동은 치매 발병과 노화에 따른 인지기능 감소의 시작을 늦추고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해마의 신경세포는 인지기능과 뇌기능장애를 극복하는데 매우 중요한데, 운동은 이 신경세포 생성을 자극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뇌기능 향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수면장애 개선: 규칙적인 운동은 수면무호흡증, 불면증 등 수면장애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수면장애는 우울증, 스트레스, 피로 등을 자극하여 신체는 물론 정신적인 피로도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출처: 김선희. “몸을 움직이면 왜 ‘정신’이 건강해질까” 「HiDoc 뉴스」. 2015년 6월 5일.

“본 연구에서 제시된 웨이트 트레이닝은 남성들의 비만 해소와 함께 혈류유속의 개선과 스트레스호르몬인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의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되며, 추후 웨이트 트레이닝의 장점을 통해 비만 남성들의 혈관 기능의 개선 및 스트레스호르몬의 완화를 위해서는 고반복 개념의 웨이트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권장하고자 한다.”
출처: 장용우, & 유정수. (2022, November 30). 규칙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이 비만 남성의 혈관계 변인 및 스트레스호르몬에 미치는 영향.

“아일랜드 리머릭 대학교 등 연구팀은 신체·정신적으로 건강한 젊은 남녀 28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게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도록 했다. 역기, 런지, 스쿼트 등 기본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주 2회씩 8주간 실시하도록 했다. 연구 결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그룹의 불안감이 20% 낮아진 점이 확인됐다. 반면 운동을 하지 않고 평소대로 생활한 대조 그룹의 불안감 정도는 실험 전후로 별반 차이가 없었다.”
출처 : 박선후. “웨이트는 외모 향상에만 효과?…‘불안감’에도 효과적” 「시사저널」. 2022년 9월 21일.



3.


 유주가 눈을 뜬 것은 늦은 아침이었다. 유주는 눈을 똑바로 뜨지도 못한 채 몸부터 일으키곤 일기부터 찾았다. 머리맡에 둔 핸드폰에서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곧장 알람을 끄고 아직도 떠지지 않는 눈꺼풀이 무거우면서도 몸은 가벼웠다. 유주는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유주는 목이 마르다고 생각했지만 방 밖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아직 세상은 그가 깨어난 줄 모르기에, 그 순간에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여유를 느끼려는 것이었다. 


 모닝저널, 유주가 아침에 쓰는 일기의 이름이었다. 새벽녘부터 일어나서 분주하게 씻고 뭘 읽고 또 뭘 쓰라네 마네 하는 미라클 모닝이라는 것과는 달랐다. 모닝저널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없었다. 단 한 줄을 써도 일종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라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덜렁 A4용지 한 장에 날짜를 적고 시작한다. 굳이 A4용지를 골랐던 것은, 어딘가 오래 간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자 함이었다. 첫날은 ‘오늘은 정말 일어나기 싫었다. 쓸 말이 정말 한 줄도 없다’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하다 보니, 어제 꾼 꿈 얘기가 재미있어서 쓰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문득 느낀 감사함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하고 싶어진 일을 적었다. 침잠하는 장기 취준생에게는 어느 순간 해야 할 일만 남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유주에게 이 변화는 별것이다. 오늘의 모닝저널에는 ‘저녁에 정영이랑 아트 퍼스트 미술 수업을 듣는다. 제목은 재료와 나, 설렌다’라고 적었다. 창밖 저 멀리서 주민들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동네에선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곤 했다.


 유주는 지난 가을을 떠올렸다. 그때 유주는, 취업을 준비하며 온라인 강의를 듣고, 필기 시험을 치르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아마 스스로를 깨나 갉아먹었었다. 좋아하던 영화, 좋아하는 친구에게조차 시간을 쏟기 싫었을 때, 횡단보도에 선 유주는 문득 저 멀리 오는 차가 자신을 치고 가는 상상을 했다. 그럼 아무 피해도 주지 않고 조용히 사라질 수 있으려나, 그럼 편히 쉴 수 있겠지. 집으로 돌아가며 연극 클래스 모집 공고를 보았다. 유주의 인생에서 연기란 것은 너무 생경한 것이었다. 그래서 유주는 본능적인 끌림을 느꼈다.


 수업에서 선생님은 세 가지 말씀을 하셨다. 지금도 유주는 이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첫째, 잘 하려 하지 말 것. 우리는 배우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끝까지 가보려는 마음이다. 둘째, 갈등을 직시할 것. 드라마는 갈등으로 태동한다. 갈등이 없다면 막은 오를 수 없다. 셋째, 인물을 사랑할 것. 우리처럼, 그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단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이 순간부터 유주의 세상은 달라진 것이다. 차가운 시멘트나 아스팔트 도로, 벽돌 사이에 끼인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 오른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 막이 끝나면 다음 막이 오를 것이다.


장기간의 코로나19 사태 이후 2030청년층의 자살 위험성 증가세가 예사롭지 않다. 보건복지부 코로나19 전국단위 국민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연령별 자살생각률이 30대와 20대에서 각각 18.8%와 14.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구직사이트가 5,000여 명의 취준생을 상대로 ‘코로나19에 따른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다수의 응답자가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 증상을 경험한 바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서울시가 실시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의 고립·은둔 청년은 약 13만 명으로 나타났다. 전국 청년을 대상으로 추정하면 약 61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고립·은둔 청년의 대부분이 가벼운 수준 이상의 우울을 겪고 있으며, 그중 39.3%는‘중증 수준의 우울’, 18.3%는‘심한 우울’을 겪고 있다.


날이 갈수록 더욱 혹독해지는 취업시장에서 청년들은 수없이 좌절하고 또다시 마음을 추슬러 도전하고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마음챙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배워보면서 ‘나도 이렇게 뭔가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라는 자아효능감을 느끼며 작은 것 하나라도 점점 성장해가는 자신을 만나는 경험이 힘든 시기를 돌파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또한 같은 어려움에 놓인 또래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며 유대감을 느끼면 그 자체로 치유 받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청년들이 심적•정신적 어려움을 겪을 때 문화예술이 하나의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이 소통의 언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음챙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문화예술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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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청년나루는 구직/직무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한 만 19세~39세 청년을 대상으로 9월 16일과 9월 23일 각각 제로웨이스트, 비누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9월 7일까지 신청자를 모집하며 나루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 영등포 오랑은 매월 다양한 취미향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9월 프로그램은 싱잉볼 테라피로 참여 청년의 몸과 마음의 밸런스를 바로잡는다는 주제로 총 4회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10월 프로그램은 영등포 오랑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신청할 수 있다.


- 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은 9월 13일에서 10월 11일까지<아로마크리스탈테라피>를 운영한다. 총 4회차로 진행되며, 나만의 성소 만들기 라는 테마로 아로마를 이용한 크리스탈 목걸이, 팔찌 등을 만들며 회복, 치유, 공감, 마음 돌봄을 경험할 수 있다. 9월 6일부터 12일까지 모집 중이며 관련 사항은 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비영리사단법인 ‘오늘은’은 대학내일에서 사회공헌을 위해 만든 기관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청년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아트퍼스트는 청년이 문화예술을 통해 함께 정서를 공유하고 마음챙김(정서관리)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사단법인 오늘은>이 운영하는 사회공헌 사업이다. 연극 만들기, 식물문화, 에세이 쓰기, 영화와 재즈를 통해 감정을 다루는 글쓰기, 미술, 음악, 운동, 카포에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본 프로그램은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다. 



4.


 현진은 실패란 얄궂어도 익숙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삼재도 작년에 끝났댔는데, 야심 차게 준비한 공모전은 이번 달도 입상하지 못하고 작사학원으로 159번째 보낸 그녀의 가사에는 어떤 엔터테인먼트도 여전히 답장이 없다. 띠링! 그 순간 문자가 왔다. "2023-2학기 A갤러리 교외근로에 불합격하셨습니다. 추후 추가모집 진행 시 메일로…." 참나. 안 해요. 안 가요. 안 사요! 다시 수정하겠다. 실패는 얄궂도록 익숙해지지 않는다. 실패란 기대감에 남몰래 부풀었던 마음을 저 땅끝까지 꺼지게 만들어서, 그 끝에 현진은 괜찮은 시늉만 잘 내게 되었다. 그래, 산책이나 하자. 그리고 좋아하는 책방에 가자하는 마음에 현진은 가방을 들었다. 울적할 땐 저가 뱉었던 숨이 아니라, 밖에서 불어온 다른 공기를 마셔야 한다.


  현진이 사는 망원동엔 사랑할 만한 것이 많았다. 현진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 골목 골목을 탐방하곤 했고 얼마 전엔 자주 가고픈 따뜻한 책방을 발견했다. 뭇사람은 곁이 외롭고 또 속이 허하면 따뜻한 것을 찾아 나서곤 한다. 옆구리를 데워줄 애인이라든가, 식도가 여깄던 거구나 가늠케 하는 뜨끈한 어묵 국물이라든가. 현진은 지금 옆구리를 데워줄 애인도 없고 찌는 여름이라 어묵 국물도 땡기지 않았다. 그래서 연이은 불합격 소식으로 우울감을 느끼던 요즘, 책으로 유일하게 그녀의 속을 채워왔던 것이다. 그리고 망원동의 책방 ‘로우북스’는 그런 현진을 가장 적당한 온도로 대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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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로우북스 (사진=이와)


 현진은 문을 열고 책방으로 들어섰다. 특별히 살 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책, 저 책을 구경하다가 지난번 사장님께 책을 추천받았던 기억이 나 대뜸 사장님께 물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힘든 취준생은 뭘 읽어야 할까요? 사장님은 현진의 눈을 어루만지듯 바라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러더니 현진을 이끌고 앞쪽 서가로 옮겨갔다.

 

- 음,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라고 황선우 작가님이 쓰신 책을 추천해 드려요. 여자 선배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아서 좋고 일, 마음, 몸 등으로 섹션이 나뉜 칼럼식이라 읽기도 편해요. 다 읽으면 일에 대한 내 생각이나 불안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제현주 작가님의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도 추천드려요. 필드에서의 이야기랑 철학적인 내용이 같이 담겨있어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생직장이 없는 불안정한 지금 시대에 우리는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해요. 밀도가 높은 책이라 평소 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드려요.

 

 현진은 오랜만에 마음이 간지러워지는 재미를 느꼈다. 어쩌면 그녀가 평생 알지 못했을 책들이, 제 소개를 하며 현진의 하루를 채워가고 있었다. 

 

- 사장님은 책방 일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다거나 힘들었던 적은 없으셨나요?

- 음, 저는 책방 운영하면서 크게 힘들었던 건 없었는데… 책방의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나가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아요. 매출이 늘었을 때는 어떻게 할까, 오프라인 행사를 더 많이 잡을 것인가 아니면 온라인 확장을 할 것인가 등. 그런 선택의 시간들이 많은데 그럴 때 저는 철학책을 읽어요.

- 철학책이요?

- 네, 한권 소개해드리자면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이 책인데요. 철학적 명제를 삶에 적용시켜서 어떻게 헤쳐 나갈지에 대한 내용이 담겼어요. 몇천 년 전 사람의 고민과 지금의 우리가 하는 고민이 여전히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것을 당장 실용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근간은 나의 우선순위이고, 어떤 식으로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 스스로가 명확해야 선택이라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 삶을 구성하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들 때는 철학책이 잘 어울려요. 주변에 흔들리는 나는 결국 타인을 보고 좋아 보이는 선택을 하게 되거든요.

 

타인을 보고 좋아 보여서 하는 선택, 아마 현진과 같은 청년들은 수없이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다시 더 단단해지고자 마음먹는 현진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두서없는 그녀의 질문에 막힘없이 책을 추천해 주시는 사장님에게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 사장님은 책이 너무 좋아서 이 책방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 음, 사실 저는 책방해야지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그냥 우연히 하게 되었어요. 사람이 오히려 힘 빼고 있을 때 잘 된다는 말이 뭔지 알겠더라구요. 사실 남동생이 여길 열었고 당시 저는 미국으로 박사과정을 가기 위해 합격증도 받고 그냥 잠깐 도와주던 상태였는데 하다 보니 영업이나 큐레이션이 즐거웠어요. 책방이라는 게 콘텐츠만 책일 뿐이지 본질은 영업이라 사실 이 일을 하면 읽고 싶은 책만을 마음껏 못 읽거든요. 다양한 책을 팔아야 하니까. 동생은 그 부분에 대해서 아쉬움을 느꼈는데 저는 지난 10년 동안 읽고 싶은 책은 충분히 읽어서 당시 욕심이 많이 없었고 그래서 제가 인수를 받았어요. 그 전까지 전 연구하고 글 쓰는 일이 가장 잘 맞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원고 의뢰가 들어와도 잘 안 써요. 글을 쓰는 게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영업하고 손님을 맞고 이야기하는 게 물 흐르듯이 편하고 몸도 아프지 않더라구요.


“그전까지 전 제가 연구하고 글 쓰는 일이 가장 잘 맞는 줄 알았는데”라는 사장님의 말처럼 현진도 스스로 자신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그녀는 늘 그 하나에만 더 집착하고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 근데 이것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뭘 하고자 했을 때 고집을 갖고 있는 것보다 변하는 나를 얼마나 잘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것이요. “나”라는 존재는 계속 바뀌어요. 뇌과학적으로도 사람은 한순간도 같은 적이 없고 계속 변하고 있대요. 저도 유학을 준비하면서 돈과 시간을 엄청 많이 썼는데 그걸 준비하고 있었을 때의 나와 붙고 나서의 나는 다른 사람이란 것을 인지했어요. 그래서 붙었다고 해서 무조건 가지 않았던 거죠. 지금의 내가 가장 행복을, 편안함을 느끼는 게 뭔지를 계속해서 느끼고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조금이나마 사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짤랑, 문에 걸린 종이 맑은 소리를 내며 책방 문이 열렸다. 현진은 잠시 다른 세상에 있다가 나온 기분을 느꼈다. 아침 내내 실패와 불합격에 잠식되었던 그녀의 마음은 사장님의 따뜻한 큐레이션과 책방에서 보았던 활자들로 금세 든든히 채워졌다. 이상한 것은, 아침과 똑같은 무게의 마음인데 오히려 현진의 발걸음은 떠오르고 있었다. 아마 지금의 행복을, 편안함을 온전히 받아들여서 그런가 보다, 현진은 생각했다.



청년을 위한 책 추천

-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제현주 저, 2014, 어크로스)


: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가”라는 대주제 아래

1. 표류하는 우리- 일의 배신

2. 지도를 다시 읽다 - 일에서 원하는 것

3. 시대의 사막을 건너는 법 – 내리막 세상의 일하기

4. 함께 가닿을 정착지 - 행복한 일을 위한 플랫폼까지 총 4가지 목차로 구성된다.

‘고정된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 얻을 수 있던 안정성이 더 이상 없는 내리막 세상에서 부유하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일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럼에도 ‘필요’ 이상을 하게 되는 어떤 마음이 있다. 돈으로 돌아오지 않을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마음, 그런 마음을 떨치는 쪽이 영리한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걸 안다 해도 쏟아서는 안되는, 그 갈 곳 없는 마음은 어째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까?” (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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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북스에서 추천한,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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