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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홍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뉴진스의 하입보이요.”_이와 성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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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포청년나루 조회수 1,348회 작성일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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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라는 질문에 에어팟을 빼고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답하며 춤을 추는 영상은 2023년 상반기 온갖 SNS에서 유명하던 밈이었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지금 듣고 있는 노래를 알려달라고 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진짜 길을 묻는 데도 대뜸 걸그룹 뉴진스의 노래를 답하는 모습이 연출됐고 그렇게 하입보이 밈이 탄생한 것이다. 가는 길을 묻는 질문에 뚱딴지처럼 노래 제목을 답하다니! 실제 인터넷에서도 이러한 유행을 이해하지 못해 “’뉴진스의 하입보이요’가 대체 뭔가요?”라고 묻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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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진스의 하입보이요’의 유행 / 출처 ‘뉴진스의 하입보이요 원본’ 유튜브 검색결과 캡쳐]

​그런데 나는 어쩐지 이러한 엉뚱한 밈이 마음에 든다. 질문에 전혀 맞지 않는 길 잃은 대답을 내놓고 해맑게 춤을 추며 떠나는 게 내가 이때까지 삶을 헤매고 걸어온 모습과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콘텐츠 제작자를 꿈꾸며 고등학교 내내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진학을 희망하던 난 입시 실패로 뜬금없이 홍대 경영학과에 들어왔고 팔자에도 없던 회계용 계산기를 두드리며 절망에 빠졌던 새내기는 현재 작사가와 A&R을 꿈꾸며 졸업을 앞두고 있다.
고등학교 진학 후 나는 입시를 위한 전공 선택의 부담을 온몸으로 느꼈다. 매년 새 학기마다 골치 아팠던 장래희망 작성란은 “희망 전공과 함께 작성”이란 말과 함께 머리를 더 지끈거리게 했다. 당시 딱히 꿈이랄 게 없던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했고 이내 사회복지사를 떠올렸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찾을 땐 먼저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살핀다. 익숙한 것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만 같으니까. 그때 내가 생각하기에 내게 가까웠던 것은 장애인이었다. 가족 중 큰아빠와 삼촌은 자폐와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고 태어날 때부터 그들과 함께였던 나는 자연스럽게 비슷한 사람들을 돕는 직업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주 금방 포기했다. 왜냐하면 20년을 넘게 그들을 봐왔지만, 장애란 여전히 낯설었고 실은 집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다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다름이라는 건 자주 마주쳐도 익숙해지지 않았고 사회복지사를 떠올렸던 건 큰아빠와 삼촌이 나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단 걸 아는 것에서 오는 알량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진로 고민이 계속될 무렵 우연히 “생각많은 둘째 언니”라는 유튜버의 “장애인 동생과 나, 시설 밖으로 나오기로 했다”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단 5분이라는 시간으로 만들어진 공간 속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서로 질문하며 답하고 있었고 지적장애인의 탈시설 및 사회 적응 문제를 다룬 해당 영상은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나는 과연 5분이라는 시간 안에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며 어떤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평생 직업으로 진심을 다해 큰아빠와 삼촌과 같은 사람들을 돕는 일은 하지 못한다 결정을 내렸어도, 어렸을 때부터 보고 겪은 것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마음은 한구석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우연히 본 영상 하나를 계기로 내가 전하고 싶은 생각을 미디어를 통해 표현하고 세상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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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등학교 2학년 때 나갔던 청소년 방송콘텐츠 대회 © 이와 ]


그때부터 콘텐츠 제작자가 되겠다는 목표와 함께 3년 동안 세뇌하듯이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를 희망하며 공부했다. 하지만 얄궂은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수시 6장 카드 중 생각 없이 썼던 경영학과에 하필 찰떡같이 붙어버리고 거창했던 목표는 명확하게 길을 잃었다. 마음을 다잡아 대학엔 들어갔지만 1학년 1학기 계산기를 두드리며 포괄손익계산서를 채우고 있을 때는 꽤 절망스러웠다. 방황하던 내가 당시 재미를 느끼던 거라곤 글을 쓰는 것과 노래를 듣는 것뿐이었고 그렇게 생각 없이 1년간 휴학까지 했다.

휴학 동안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 지냈고 하루는 아빠랑 술 한잔하러 가는 길, 아빠가 네가 좋아하는 글쓰기랑 노래 듣기 둘 다 할 수 있는 작사를 해보는 거 어떻겠냐 지나가듯 말을 건넸고 나는 그 길로 작사 학원에 등록했다. 아빠가 하라는 건 죽어도 안 했던 나는 이상하게 그 여름밤 아빠의 말에 꽂혔고 지금은 열심히 회사에서 주는 데모를 듣고 정말로 가사를 쓰고 있다. 아직 단 한 곡의 가사도 컨펌받지 못했지만 징그러운 실패에도 단 한 번 성공해 보고 싶은 일이 작사가 되었고 그 길로 엔터테인먼트에서 아티스트 기획도 맡고 싶다는 꿈도 꾸기 시작했다. 돌고 돌고 돌아 꿈이라는 것에 다시 정착한 것 같지만 사실 이제 하나의 꿈이라는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 당장은 작사가가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콘텐츠 제작도 하고 싶으며 이러다 몇 년 후에는 여행가가 되고 싶다고 할 수도, 복권 1등에 당첨되어 꿈 따윈 필요 없다며 빈정댈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든 다시 길을 잃을 수 있다. 물론 그렇게 길을 잃어 허우적거리는 과정이 무섭다는 걸 알지만 분명 또 다른 곳으로 가는 나만의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이렇게 생각하면 “홍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라는 질문에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답한 것이 그다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지 않은가? 어디로 가야 할지, 그곳을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대답은 사람들마다 다양할 것이다. 언젠가 가는 길을 몰라 막막하다면 떠올려보자. 목적지에 도착하는 방법은 초록색 2호선의 홍대입구역 9번 출구가 될 수도, 6호선 상수역이 될 수도, 마포16 마을버스가 될 수도,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뉴진스의 하입보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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